베싸메무초-짧은 인생과 긴 예술
세상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음악들이 여럿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고 싶은 음악도 그 중 하나인데 늘 그렇듯이 단순히 듣기만 하는 음악보다는 그 음악에 얽힌 역사와 사연을 알고 듣다 보면 더 큰 감동이 올 것 같아 몇 자 적어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원로 가수 현인 님이 1960년대 한국에 소개한 노래 중에 "베싸메무초(Besame Mucho) 란 노래가 있습니다. 당시로는 특이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고 또 전직 모 대통령이 즐겨부른다고 해서 한 때 화제가 되었던 곡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같은 제목의 영화가 나오기도 했고 또 많은 영화의 삽입곡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기네스 펠트로우가 나오던 '위대한 유산' 에서 주인공 커플이 춤을 출 때 나오던 음악이 바로 체사리아 에보라가 부르던 베싸메무초 이지요.

한국에서 소개될 때는 원곡의 가사 "많이 키스해 주세요" 가 당시의 한국 정서에 맞지 않아 베싸메무초가 마치 한 여성의 이름인 것처럼 번역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더군요. 한글 가사에 있는 리라꽃이니 산타마리아니 하는 단어들이 원곡에는 전혀 들어 있지 않으므로 적어도 한국어 베싸메무초는 가사면에서는 원곡과 별개의 노래라 할 수 있겠지요.

이처럼 현 인의 노래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 외에 많은 외국 음악인들을 통해 이 곡은 꾸준히 소개되어 왔습니다. 잘 알려진 아티스트들로서는 멕시코의 3 인조 마리아치 밴드인 트리오 로스 판초스, 프랑스의 달리다, 비틀즈 등이 있고 최근에는 다이안 크랠, 체사리아 에보라, 그리고 플라시도 도밍고와 같은 클래식 아티스트들까지 전세계의 음악인들이 이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아마 이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특히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한 사람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체사리아 에보라의 베싸베 무초가 좋습니다.
허스키한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부르는 노래가 이별을 앞둔 마지막 밤 정열적인 키스를 원하는 마음을 한층 더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는것 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8 트랙 카트리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던 현 인의떨리는 듯한 묘한 목소리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노래의 원곡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멕시코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콘수엘로 벨라스케즈(Consuelo Velazquez, 1920-2005, 출생 연도에 대해서는 1916년이라는 설도 있습니다.)가 1941년에 작곡한 노래입니다. 벨라스케즈는 4살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였고 6살때에 최초로연주회를 할 정도로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멕시코 국립 음악 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전문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음악계에 진출을 합니다. 멕시코 시티의 라디오 방송국인 XEQ 에 소속되어 연주 활동과 작곡을 병행하였습니다. 정통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로서 교육을 받았지만 작곡은 독학으로 공부하였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그녀의 음악에서는  일반 대중 음악 작곡자들에게 찾아 보기 힘든 정통 클래식의 풍부한 화성이 들어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21세(혹은 25세-출생 연도에 따라)이던 1941년에 전세계에 알려지게 될 이 음악을 작사, 작곡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까지 그녀는 전혀 키스를 해보지 않았다고 종종 말하곤 했답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많이 키스해 달라는 노래를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스페인어 가사인 Bésame, bésame mucho, / Como si fuera esta noche la última vez (키스해 주세요 아주 많이, 마치 오늘 밤이 마지막 인것처럼) 는 미국에 소개 되면서  Bésame, bésame mucho, / Each time I cling to your kiss, I hear music divine(키스해 주세요 아주 많이, 당신과 키스할 때마다 나는 천상의 음악을 듣습니다.)로 바뀌면서 좀더 감상적인 가사로 바뀝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오면 베싸메무초가 어여쁜 아가씨가 되어 버리지요.


그런데 벨라스케즈가 작곡한 이 노래는 그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다른 곡의 영감을 받아 그녀가 작곡한 노래입니다. 이야기는 1941년에서 30년 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페인 출신의 작곡가인 엔리케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1967-1916)는 1916년 뉴욕의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자신의 오페라인 고예스카스(Goyescas) 를 초연합니다. 그리고 이 오페라에서 불리워졌던 아리아 중에 "Quejas, o la Maja y el Ruiseñor" ("Plaints, or the Maiden and the Nightingale"-비탄, 혹은 아가씨 그리고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의 아리아라고도 불림)라는 곡이 있는데 이것이 베싸메무초의 원곡이라고 합니다. 이 아리아의 멜로디를 따서 베사메 무초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죠. 영국 출신의 소프라노 레이첼 하인즈가 부르는 나이팅게일의 아리아 가 인터넷에 떠있더군요.


이 오페라가 실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큰 성공을 거두지도 못 한채 그라나도스는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제 1 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영국 해협을 건널 때 그가 타고 가던 여객선이 독일군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그라나도스는 47세로 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일설에는 자신은 무사히 구명 보트에 탈 수 있었으나 아내가 미처 타지 못한 것을 보고 아내를 구하러 물에 뛰어 들었다가 같이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며칠 전 다른 배를 타고 돌아가게 되어 있었으나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윌슨이 그라나도스에게 백악관에 와서 연주해 줄 것을 청하는 바람에 일정이 늦어지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이러한 비극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 아리아가 벨라스케즈의 관심을 끌었을까요? 사실 이 아리아는 그라나도스가 오페라를 위해 작곡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피아노 소품으로 작곡한 멜로디를 오페라 아리아로 옮긴것입니다. 따라서 벨라스케즈가 접한 것은 이 아리아보다는 이 아리아의 원곡으로 그라나도스가 1911년 경에 작곡한 피아노 소품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6개의 피아노 곡으로 이루어진 그라나도스의 피아노 소품집인 " Goyescas"  중 한 곡으로 작곡된 것이 바로 "Quejas, o la Maja y el Ruiseñor"인데 이 곡은  피아노 연주곡으로 요즘도 자주 연주되고 있습니다.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로서 훈련받은 벨라스케즈가 접한 곡이 아마 이 연주곡이었을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불후의 명곡을 작곡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렉 앤더슨의 연주를 링크시킵니다.)

이 노래와 얽힌 예술가들 사이의 관계는 벨라스케즈와 그라나도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1911년에서 다시 100년 쯤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그라나도스의 피아노 작품집 Goyescas 는 번역하면 '고야의 스타일을 따라" 정도로 번역이 되는데 다들 잘 아시는 스페인의 화가 프란치스코 고야(1746-1828)가 이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고야의 그림을 본 그라나도스는 예술가로서의 고야와 그의 일생, 그리고 그의 그림과 그림 속의 모델 모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 검은 벨벳과 대비되는 연분홍 빛 뺨 그리고 진주 빛 손과 흑옥의 장신구들 이 모든것에 나는 홀리듯 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들을 보고난 그라나도스가 그 그림들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한 것이 바로 그의 피아노 소품집인 Goyescas 입니다.

결국 고야의 그림 속의 아가씨들(Majas)이 오늘 날의 베싸메무초를 있게 한 시초가 되는 셈이지요. 그러고 보면  "리라꽃같은 귀여운 아가씨" 라는 한국 가사가 원래의 의미와 거리가 먼 것만은 아닌듯 합니다.  고야가 세상을 떠난지 200년이 되어 가고 그 보다 100년 후에 등장한 그라나도스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장 늦게 베싸메무초를 작곡한 벨라스케즈도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베싸메무초는 그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고 아마 어쩌면 영원히 우리 곁에서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아울러 고야의 많은 그림들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냥 스치듯 하는 말이지만 정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가 봅니다.

오늘의 퀴즈 한가지 ; Ars longa, vita brevis 는 누가 한 말일까요?

아래에는 멕시코 방송국에서 콘수엘로 벨라스케즈가 직접 출연하여 베싸메무초를 연주하는 장면과 루이스 미구엘이 부르는 베싸메무초를 링크 시킵니다. 특히 루이스 미구엘의 베싸메 무초는 아주 박력있습니다. 키스 안해주다가는 한 방 맞을 것 같습니다.

벨라스케즈의 베싸메무초는 오래 전 화면이라 음질은 나쁘지만 이 노래의 원곡을 짐작케 하는 피아노 연주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은 아래에 소개해 드릴 러시아 웹싸이트를 방문해 보십시오. 웹페이지를 만든 사람은 정말 베사메무초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100여명의 아티스트들이 연주하고 노래한 베싸메무초를 모아놓았고 그 외에 베싸메무초를 연주하거나 노래한 거의 모든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관한 정보를 소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엠피쓰리 파일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과 글 속의 이미지 및 음악은 아래의 자료들을 참고 했습니다.

  • MARK LARRAD: 'Granados, Enrique', Grove Music Online (Accessed 15 November 2006), http://www.grovemusic.com/shared/views/article.html?section=music.11603
  • Robert Stevenson: 'Velázquez, Consuelo', Grove Music Online (Accessed 15 November 2006), http://www.grovemusic.com/shared/views/article.html?section=music.2021499
  • Besame mucho - Консуэло Веласкес== 위에서 말씀 드린 러시아 웹싸이트입니다.
  • Mark Harden's Artchive
  • Enrique Granados - Biography
  • by Clio | 2006/11/16 08:02 | 음악 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6)
    트랙백 주소 : http://cliomedia.egloos.com/tb/55736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 베싸.. at 2007/08/07 00:11

    ... 베싸메무초-짧은 인생과 긴 예술 아부지의 18번 노래였었는데..이 노래만 부를라시면 얼굴에 자꾸 인상을 잡으셔서 어린맘에 인상쓰는게 싫어서 이 노래도 덩달아 싫었었는데..오늘은 ... more

    Commented by rayray at 2006/11/16 11:27
    아- 재밌네요 잘 읽고 잘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루이스 미구엘이란 분은 정말 때릴 것 같아요 ㅎㅎㅎㅎ
    개인적으론 피아노곡이 좋았습니다 >-<b
    Commented by Clio at 2006/11/17 14:58
    rayray 님/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죠? 루이스 미구엘 버전은 박력이 있구요. 일전에 러시안 테크노 버전의 베싸메 무초를 들었는데 말입니다. 전형적인 테크노 비트에 낮은 러시아 바리톤 목소리로 "베싸메.." 하는데 소름이 쫙 끼치더군요. ^^ 방문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Charlie at 2006/11/20 12:32
    친구와 '한번도 키스해본적이 없어서' 베사메 무쵸를 불렀다던 가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와보니 포스팅이 있군요~!
    저 노래를 부르고 나서는 많은 키스를 받았을테니, 다행이겠지요? :)
    Commented by Clio at 2006/11/21 04:10
    Charlie 님/ 그랬기를 바랍니다. ㅎㅎ. 그런데 이탈리아 페루지아에서 만들어지는 Baci(바치)라는 초콜렛을 들어보셨습니까? 이탈리아어로 Bacio (바치오 복수형은 Baci--)는 키스라는 의미인데 이 초콜렛이 키스처럼 달콤하다는 뜻이 아닐런지요. 일전에 초콜렛 이글루에 관한 글을 올리셨을때 이 생각을 했었습니다. ..
    Commented by Charlie at 2006/11/24 16:02
    아니요 처음들어봤어요~ 키스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초콜렛이라.. :) 멋진 문구네요.
    저는 베사메와 베사멜 소스의 연관성에 대해서 더 궁금했었어요~ :)
    Commented by Clio at 2006/11/25 00:27
    Charlie 님 / Béchamel 소스를 말씀하시는건가요? 제가 잠시 찾아보니, 이 소스를 처음 만든 사람이 프랑스 인인 Louis de Béchamel (1635–1688) 이군요. 그나저나 챨리님은 전공을 바꾸시는 것이 어떨지요 ^^? 요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관심은 당장 전문가로 나셔서도 될 것 같습니다. 하기야 지금도 인간의 몸을 위하는 일을 하고 계시니 결국 음식과 거리가 먼 것도 아니네요. 음...그러고보니 챨리님의 전문적인 일과 취미가 절묘하게 연관이 되는 것 같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