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Caravaggio) 와 16세기 유럽의 타짜 (1) 기타 등등

* 12월의 로고 이미지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최근 타짜라는 영화와 함께 도박과 특히 도박에서 속임수를 쓰는 이른바 타짜들에 대한 이야기를 매스컴에서 많이 이야기하더군요.미국에 있다 보니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허영만님의 만화를 본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올리고 싶은 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제가 전부터 소개하고 싶었던 화가의 그림 중에 '타짜' 그림이 있고 또 최근의 영화도 있고 하여 이 글을 올립니다.

사실 도박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박에서 속임수를 써서 이기려는 사람들도 도박의 시작과 함께 존재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주사위가 발견되었는데 이 주사위가 특정한 숫자만 나오도록 조작된 주사위였다는 겁니다. 제가 12월의 로고 이미지로 선택한 그림도 바로 이러한 사기 도박에 관한 그림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보신 적이 있는 그림일 겁니다. 일단 그림 부터 보시죠.

위 에서 보시는 그림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반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가 그린 "카드사기꾼(Cardsharps 이탈리아어로는 i Bari)"이라는 작품입니다. 1594년 경에 그려진 작품인데 현재는 미국 텍사스주 포트 워스(Fort Worth)에 있는 Kimbell Art Museum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입니다. 하지만 흔히 그의 고향인 카라바조를 따서 본명 보다는 카라바조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위대한 르네상스의 예술가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narroti, 우리가 알고 있는 천지창조의 화가 미켈란젤로)와 구별하기 위해 그렇게 부르지 않나 싶습니다. 카라바조는 우리가 흔히 근,현대의 예술가들에게서 종종 보는(물론 모든 예술가들이 다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반항적이면서 격정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도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이탈리아 반도 남부와 말타 섬에까지 도망다니는 등 그리 순탄치 않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의 화풍은 사실주의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사물과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이것들을 둘러싼 극적인 명암의 대비는 그의 작품들을 보는 사람들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납깁니다. 아주 어렸을 때 제가 처음 본 그의 작품이 적장의 목을 베는 유디스(Judith Beheading Holofernes) 였는데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적장의 목을 자르는 그 순간의 반쯤 잘려진 목과 분수처럼 흐르는 피를 보고 나서  며칠 간 악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강한 인상이 오히려 나중에는 이 화가의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요즘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12월의 로고로 사용한 이 그림에서도 세 사람의 등장 인물이 만들어내는 한 편의 스토리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뽀얀 피부와 복숭아 빛 빰의 순진한 얼굴로 카드를 살펴보고 있는 청년, 이 청년의 하얀 얼굴은 그의 검은 옷과 대비가 되어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부드러운 얼굴의 선이 마치 소녀를 연상하게 합니다. 카드를 들고 있는 수줍은 듯한 자세에서도 초보라는 것이 드러나지요? 타짜들의 용어를 빌자면 '호구' 가 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그 청년의 뒤에서 몰래 카드를 훔쳐보고는 마주 서 있는 같은 패거리에게 손가락으로 카드의 숫자를 알려주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거무튀튀한 얼굴에 구멍 난 장갑을 끼고 있는 그는 손으로는 카드의 숫자를 신호해 주고 있지만 눈은 "호구"의 카드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철저한 직업 의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멍난 장갑과 카드를 자세히 살피기 위해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 까지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같은 식구의 신호를 받고 숨겨둔(엉성하기는 하지만요.) 카드를 꺼내 바꿔치기 하려는 이른바 "타짜"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납니다. 시선은 순진한 '호구'에게 고정되어 있지만 오른 손은 허리 뒤로 돌아가서 미리 준비한 카드들을 빼내고 있습니다. 이 타짜의 얼굴도 해사한 것이 어찌 보면 순진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타짜의 중요한 무기 중의 하나이겠지만요. 동료가 장갑을 낀 반면 이 "타짜"는 맨손으로 카드를 만지는 것으로 보아 혹시 카드의 표면에 미리 표시를 한 것은 아니었는지요? 그렇지 않고서는 허리 뒤의 카드 중 필요한 카드를 보지도 않고 꺼낼 방법이 없겠지요? 이런 수법을 타짜들은 뭐라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요즘은 사용하기 어려운 엉성한 기술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순진한 '호구'의 얼굴을 보아하니 이보다 더 엉성한 방법도 통할것 같습니다.

카라바조의 대표적인 초기 작품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예술사 적으로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그 당시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사료로서도 큰 가치가 있습니다. 그림의 주제인 도박에 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입었던 옷과 장신구와 가구, 소품 등등 보기에 따라서 이 그림 하나로도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그림은 당대는 물론 후대의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사기 도박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몇 편 소개하겠습니다.

P.S.
위에서 소개한 카라바조의 그림 중 유디스의 그림은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라 링크를 달지 않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구글에서 "
Judith Beheading Holofernes"로 찾아 보십시오. 하기야  CSI 시리즈가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그 정도 그림은 그리 충격적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글에 사용된 그림의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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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닥슈나이더 2006/12/20 08:41 # 답글

    잘봤습니다..^^;
  • 아카 2006/12/20 10:02 # 답글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모습은 비슷하군요 :)
  • 글라시아 2006/12/20 15:44 # 답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미술사 교과서에선 카라바조라는 이름으로만 나왔는데, 본명은 무려 미켈란젤로였군요.^^
  • neclipse 2006/12/20 16:16 # 답글

    어찌어찌 파도를 타고 왔습니다.
    흥미 있는 글들이 많네요. 재밌고 흥미로운
    글들 자주 올려주세요. 자주 들리겠습니다. ^^
    ps. 링크 하구 갑니다. >ㅅ<
  • fermin 2006/12/20 18:25 # 삭제 답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정말 박학다식하세요. 좋은 그림 공부+감상하고 갑니다.
    흠... 잠시 fortworth에 있었었는데... 그림 구경할 생각은 못했었네요! ^^
  • 첼로♡ 2006/12/21 01:00 # 답글

    그림 감상 잘 하고 갑니다 :) 귀부인을 등쳐먹는(....^^;;;) 사기꾼들인줄 알았더니 순진한 청년이었군요! '타짜'의 고니도 처음엔 저렇게 순진했을까요? 하핫 언제나 많은 것을 얻어 갑니다^^
  • Clio 2006/12/21 08:25 # 답글

    닥슈나이더 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보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아카 님/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행동하는 양식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날 우리의 눈으로도 과거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라시아 님/ 아마 천지창조의 미켈란젤로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카라바조를 미켈란젤로라고 불렀을런지도 모릅니다. 그죠? ^^

    neclipse 님/ 흥미롭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들러주세요.

    fermin 님/ 과찬이십니다. 직장이 도서관이다 보니 포스팅에 필요한 자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 뿐입니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서도 돈을 받는 이런 직장이 어디있겠습니까?^^ -- 사서들 끼리 하는 농담이랍니다.

    첼로♡ / 아닌게 아니라 순진한 '호구'가 모든 것일 잃고서 '타짜'가 되는 경우가 많다던데요... 그나저나 이 블로그에서 조금이라도 얻어 갈 것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 ghistory 2008/12/23 17:35 # 답글

    포트 워드→포트 워스?

    허 '명' 만→허 '영' 만 입니다.
  • Clio 2008/12/24 14:45 #

    고쳤습니다. 눈까지 어두워졌나 봅니다. 허영만님의 이름을 허명만으로 해두고 아직까지 알아차리지 못 했으니 말입니다. 저는 "고독한 기타맨"의 팬이었습니다.^^
  • ghistory 2008/12/23 17:36 # 답글

    유디스: 유디트가 아닌지요.
  • Clio 2008/12/24 14:47 #

    그런데 개역 한글(개정)판과 공동 번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유딧이라고도 하는군요. 헷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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