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일본 소설을 탐닉하고 한국의 작가들이 쓴 대하 소설을 외면하고 있다는 기사 를 보았습니다. '탐닉'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기자의 의도가 궁금합니다만 일본 소설의 인기는 최근의 일이 아니라 예전 부터 있어온 현상입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그린 '대망'이라는 대하 소설이 장안의 지가를 올렸었고 관동군 장교출신 일본 기업인의 이야기를 다룬 야마자끼 도요꼬의 소설 "불모 지대" 역시 직장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권장되기도 했었습니다.그런데 기사는 대학생들이 한국의 작가가 쓴 대하 소설이나 전공 서적을 멀리하고 일본 통속 소설을 주로 읽는다는 것을 문제 삼은 듯 한데 사실 이러한 종류의 기사들은 심심찮게 신문 지면을 장식합니다. 그 이전에는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이 대학 도서관의 대출 순위 1위라는 기사 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들이 전공 서적 보다 흥미 위주의 대중 소설을 더 많이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공공도서관의 숫자가 많지 않은 한국 실정에서 대학 도서관이 어느 정도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학생들이 여가 시간에 읽을 책도 갖추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신문 기사에 관해서는 전창호님의 "신문은 '대학생 죽이기'를 위해 왜 대학도서관을 끌어들이나?" 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대학 도서관의 대출 통계 자료가 지니는 맹점을 지적해주신 흥미로운 글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오락을 위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연구와 수업 지원을 위한 도서가 어느정도 갖추어지고 난 이후에 고려해야 할 일이겠지요. 그래서 대학 도서관의 기본적인 역할이라는 측면으로 돌아가서 제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대학생들이 그런 책을 읽는 현상이 아니라 왜 대학 도서관에 그런 흥미 위주의 책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있냐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용자의 요청도 있었겠지만 이처럼 판타지 소설과 무협지가 서가에 넘쳐나는 것을 본 학생들 가운데에서도 이게 과연 대학 도서관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이들이 있더군요. 그렇다면 이것은 연구와 수업을 위한 책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의미일까요?기사에 나온 서울 소재 대학 중 3곳을 선택해 도서관 목록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유명 무협지 작가 한사람의 이름으로 검색을 했더니 숫자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든 도서관에 그 작가의 무협지가 있더군요. 어떤 도서관에서는 친절하게도 복본으로 갖추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좀 황당했던 것은 의학도서관이라고 이름이 붙은 도서관에서도 이 작가의 무협지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무협지에 나오는 인체의 혈도를 의학적으로 연구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학에는 반드시 도서관을 설치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대학 도서관의 규정을 살펴보면 대부분 아래와 같이 도서관의 설치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대학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국내외의 자료 및 학술 정보를 수집, 정리·분석,보존·축적하여 교직원 및 학생에게 연구 및 학습자료 등의 제공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 서울대학교 도서관 규정 중그렇다면 앞서 소개한 기사에서 언급된 일본 소설들이 대학 도서관에 있는 것은 그 대학에 일어 일문학과가 있고 그 학과의 교과 과정에서 그 책들을 필요로 하거나 학과의 교수님들 중에 일본의 대중 소설을 연구하시는 분이 계셔서가 아닐까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 기사에 언급된 몇 몇 대학들 중에는 일어일문학과가 아예 없는 대학도 있습니다. 물론 꼭 일문학과에서만 그 책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목적으로도 대학 도서관에서 그 책을 갖추어 놓아야 할 필요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과연 누가 도서관에서 구입할 책을 결정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누가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을 몇 질씩 복본으로 대학 도서관에 구입하도록 했냐는 것이지요. . 과연 대학 도서관으로서의 설립 이념에 맞는 이른바 "장서 개발 정책(Collection Development Policy)"에 따라 책들을 구입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장서 개발 정책은 누가 세우고 구입하는 책들이 장서 개발 정책에 맞는 것인지는 누가 심의하는 것일까요? 물론 사서 선생님들께서 수고 하시겠지요. 그런데 구글과 네이버에서 간단히 검색해보니 장서 개발 정책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그리고 미래를 제시하는 연구 논문은 많았습니다만 실제 장서 개발 정책이 공개되어 있는 경우는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교육부에서 대학 도서관을 평가할 때 도서관에서 가지고 있는 장서의 숫자가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예전 대학이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할 때 대학 설립을 위해서 일정량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은 반드시 있어야 하니 헌책방에서 초등학교 "탐구 생활" 같은 책을 수백권 사다가 장서숫자에 채워넣고 대학 설립 허가를 받았다고 하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서수를 놓고 보아도 한국의 대학 도서관들이 가진 장서는 비슷한 규모의 경제력을 가진 다른 나라의 대학 도서관에 비해 많이 적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흥미 위주의 책을 제외한 장서의 양과 질을 따지고 본다면 상황은 더 심각하겠지요.저는 현재 도서관에서 역사학과 관련된 책들을 선정, 구입하고 이용자들의 구입 요청 도서를 심의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거의 매일 하는 일중의 하나가 역사 관련 저널에서 새로 나온 책의 서평을 살펴보고 최근의 연구 동향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매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교내에서 이루어지는 역사학 관련 강좌들의 강의계획서를 확보하여 강의에 필요한 책들을 미리 주문해 놓습니다. 아울러 자주 학생 및 교직원들과 면담을 하여 학과에서 필요한 자료들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자료 선정에 참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업과 연구에 필요한 책을 구입하기에도 예산이 빡빡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각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사서들의 실정이 모두 그러하다 보니 흥미 위주의 대중 소설 구입은 엄두를 못 냅니다. 물론 수업이나 연구에 필요한 경우는 예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문적인 장서 개발이 가능한 것은 미국 도서관 사서들이 최소한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한 사람을 심리학 담당 사서로 뽑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이와 같은 주제 전문 사서(Subject Bibliographer)를 뽑을 때 자격 조건으로 해당 분야의 석사 학위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연구 중심의 큰 대학 도서관에서는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을 찾기도 합니다. 실제 박사 학위를 가진 사서들도 많이 있구요. 이러한 전문가들이 책을 선정하기 때문에 그만큼 질 높은 장서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아울러 각 과목 별로도 매우 세세한 장서 개발 정책이 있습니다. 역사 과목의 예를 들자면 "우리 학교에서는 독일 관련 연구자가 없고 관련 강좌도 적으니 그 분야는 기본적인 개설서 수준의 책만 구입한다." 반면 "20세기 초반 미국 사회에 관해서는 연구자들도 많고 강좌도 학부와 대학원에 걸쳐 개설되어 있으니 이 분야에 관한 책은 매우 전문적인 분야의 연구서까지 수집을 한다." 는 식의 정책이 문서화되어 공개 되어 있고 학과의 상황에 따라 수시로 수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누가 정책에 맞지 않는 책을 요구할 경우 이 정책을 근거로 거절 할 수도 있지요. 남의 나라에서 하고 있는 이러한 일을 상황이 다른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자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한국 도서관의 예산 집행 절차가 다르고 사서 제도가 다르며 또 대학교의 상황이 다르니 절대 외국의 제도가 좋다고 무작정 따라할 수도 없고 따라서도 않되겠지요.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열악한 조건에서 열심히 수고하고 계시는 한국의 사서 선생님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들의 노고에 치하를 보냅니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이만큼이라도 도서관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다만 이 글은 책의 숫자 만을 가지고 논의할 것이 아니라 어떤 책을 도서관에서 소장해야 할지 그리고 대학이라는 고등 교육 기관에서 도서관의 역할이 무엇인지 대학 구성원 모두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겠다는 의미에서 드리는 글이었습니다. 아울러 도서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정부와 사회에서 좀 더 관심 가져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 이글을 위해 참고한 웹싸이트와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
카테고리
최근 등록된 덧글
아 카드...
한국에서 카드..
by 큰별아씨 at 10/15 노트북이나 책을 올려놓을 수.. by 희야 at 10/15 저도 종종 하는데요, 도서관.. by 현재진행형 at 10/15 '바벨의 도서관'이 떠오르.. by 에바 at 10/15 Not yet. 에서 절로 웃음이.. by 극악 at 10/15 학교를 떠난지 몇년 되었는데.. by 썬데이뉴욕 at 10/15 Not yet. 아하하 ^_^; .. by 풀잎열매 at 10/15 도서관에서 일하심에도 여전.. by polarnara at 10/15 Not yet 이기는 하지만 som.. by 댓글동냥 at 10/15 참 좋은 곳에서 일하시는군요.. by 구들장군 at 10/15 최근 등록된 트랙백
Order phentermine online.
by Phentermine. Planet Bike 78212 by http://l.smeckpygu.com.. 홍별명의 생각 by jazz' me2DAY mindfree의 생각 by mindfree's me2DAY 에소프레소 북 머신!! 좀 짱인.. by 블로그 : 인간의 확장 이글루 파인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