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꿈
어린 시절 저의 아버지께서는 약국을 경영하셨습니다. 시골의 작은 군청 소재지에서 작은 약국을 운영하셨지요. 그 때 저희들은 이층집에서 살았는데 일 층의 절반은 약국으로 사용했고 나머니 절반과 이 층은 저희 가족의 생활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다다미가 깔린 이 층은 부모님의 침실 겸 아버지의 서재였지요. 아버지께서 보시던 책들이 큰 책장 몇 개에 빽빽하게 꽂혀 있었습니다. 물론 저와 동생이 자던 일 층의 방에는 어린 제가 보던 책들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저는 자주 이 층에 올라가서 아버지께서 읽으시는 책들을 살펴보곤 했습니다.

의학 관련 서적도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어린 시절, 그리고 대학 시절 읽으셨던 다른 주제의 책들도 있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있었지요. 그런데 이 층에는 제가 특히 좋아한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구본이었습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지구본이 제게는 참 재미있는 장난감이었습니다. 그게 뭔지 제대로 모를 때는 그저 손으로 돌리면 빙빙 돌아가는 둥근 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차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그 지구본은 저에게 경이의 대상이었습니다. (옆의 이미지는 위키미디어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미국에서 오는 비행기가 왜 하와이가 아니라 알라스카의 앵커리지를 거쳐 오는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둥근 그 지구본을 통해서였습니다. 지구본에 깨알같이 쓰인 나라 이름들과 도시들의 이름을 보면서 그 도시들을 생각했었고 과연 그 도시가 실제 존재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그리고 지구본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낮일 때 지구 반대편은 밤이라는 사실, 북반구는 여름인데 남반구는 겨울이라는 사실 등을 생각하며 신기해했었지요.

그런데 이층에 있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다른 나라에 대한 저의 궁금증을 그렇게 부채질 해 준 것은 지구본 말고도 또 다른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책이었지요. 특히 김찬삼(1923-2003)이라는 여행가가 쓴 세계일주여행기는 지구본과 함께 아주 좋은 짝을 이루어 저의 호기심을 북돋웠습니다. 아마 30대 후반이 넘으신 분들은 김찬삼 선생의 여행기를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김찬삼 선생은 한국 사람들의 해외 여행이 지금처럼 자유롭지 않던 50년대 말부터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 곳곳의 모습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신 분이시지요. 미주와 유럽의 나라들뿐만 아니라 오지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 등지를 다니시며 한반도, 그것도 반으로 나누어진 남한에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바다 건너 밖에 존재하는 넓은 세계에 대해 알려주셨지요.

그 분의 이야기는 유명한 관광지와 유적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일주 무전 여행기" 라는 그 분의 책 제목에서 보듯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가난한 여행자의 여행기였기 때문에 그 책에는 화려한 호텔과 값비싼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여행을 하며 만난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저는 비록 상상조차 쉽게 되지 않았지만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을 날아가는 그렇게 먼 곳에도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구본을 옆에 두고 김찬삼 선생의 여행기를 읽으며 저는 그 분이 지나가신 발자취들을 지구본 위에서 더듬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또 지금 이렇게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것도 어쩌면 어린 시절 보았던 그 책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몸은 한국의 시골, 작은 집의 이층방에 있었지만 김찬삼 선생의 여행기를 읽으며 제 마음은 오대양 육대주를 날아다녔습니다.

책이 바로 그런 것이지요.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보면서 마치 세계가 한 자리에 모여 있는것 같다는 말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유명한 말이 아니더라도 책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은 우리가 꿈을 꿀 수 있게 해줍니다. 물론 책마다 저자가 우리에게 전해 주려는 꿈이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꿈만을 꾸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책을 읽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 만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꿈을 꾸면서 아이들은 어른으로 자라나고 어른들은 더욱더 성숙하고 현명한 어른이 되는 거지요.

어떻습니까? 오늘도 꿈을 한 권 사서 집에 들고 가보시지요. 돈을 내고 구입하기에 마땅한 꿈이 없으면 꿈의 창고인 도서관에 들러보십시오. 그리고 그 곳에서 마음에 드는 꿈을 빌려가십시오. 나중에 책은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책에 있던 꿈,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여러분이 꾸신 꿈은 여러분들에게 남아 있을 겁니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고 계시는 분들은 그 아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이 책들에 관심을 가져보십시오. 물론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꿈이 필요하지요. 꿈이 없는 세상, 아니 꿈을 꾸지 못 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 김찬삼 선생이 누구신지 궁금하신 분들께는 최근 선생의 5주기를 기념하며 출간된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이라는 책을 권합니다. 그리고 경인 일보에 실린 선생에 대한 기사와 선생께서 재직하셨던 세종대학의 세종뉴스에 실린 기사를 연결합니다. 이 글을 준비하며 찾아 보니 선생의 유품들을 모아서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설립한 김찬삼 세계여행문화원이 영종도에 세워져있더군요. 그 곳에는 각 종 여행 관련 책과 자료들을 모아 놓은 여행도서관도 있다고 합니다. 여행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 방문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가셔서 여행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마음껏 꿈의 나래를 펴보십시오.

** 이 글에 사용된 책 표지 이미지는 인터넷 고서점 북헌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by Clio | 2008/09/06 10:03 | 도서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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