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 스펜서와 그녀의 커피 하우스(2)
* 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한글 표기를 '리나'로 할 것인지 '레나' 할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녀가 이탈리아계 이민의 딸이라는 것을 생각해서 이탈리아 식으로 발음을 했는데 최근 구한 레코딩을 들어보니 본인도 '리나'라고 발음을 하더군요. 그래서 '리나' 로 고칩니다.
1962년의 어느 날이었다고 합니다. 뉴욕 시티에 있으면서 리나의 까페에서 공연할 젊은 음악인들을 구해 주던 한 사람이 리나에게 금방 새 앨범을 낸 신인 가수 한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리나는 별로 그 가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목소리에 내뱉는 듯한 듯한 그의 노래들은 당시까지 들어오던 포크 음악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뉴욕 시티에 있던 그 지인은 그동안 자신이 리나를 도와준 것을 생각해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끈질기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말 동안만 공연을 하기로 하고 뉴욕 시티에 있던 그 신인 가수가 사라토가에 왔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몸집에 아직 어려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반항적인 눈을 가진 이 젊은 가수는 리나의 까페에서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까페에 있던 손님들은 이 가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개성있는 목소리로 부르는 중얼거리는 듯한 노래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객석에 앉아 그 가수에 대해 수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공연을 하기 힘들 정도로 소음이 심해졌고 이것을 보다 못한 리나는 무대로 뛰어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잡고 까페에 있던 관객들에게 한바탕 훈계를 늘어놓았습니다. "지금 이 가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하고 있는 중이고 관객으로서 여러분들은 성실하게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떠드는 것은 공연을 관람하는 에티켓에 어긋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관객을 조용히 시킨 후에야 공연이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결국 주말 공연을 채 마치지 못 하고 이 가수는 뉴욕 시티로 떠났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난 후에 리나는 전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한 포크 가수의 이름을 듣습니다.  로버트 알렌 짐머만(Robert Allen Zimmerman)이라는 본명 대신 자신이 숭배하던 시인 딜런 토머스의 이름을 따서 밥 딜런(Bob Dylan) 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하던이 가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리나는 자신이 무대에 뛰어 올라 청중을 조용히 시키고서야 공연을 마칠수 있었던 그 젊은 가수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아래에는 까페에서 60년대 초반에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에서 왼쪽 모자를 쓴 사람이 딜런이고 오른쪽에 앉아 딜런을 보고 있는 사람이 리나입니다.)
그 날 공연 이후 밥 딜런은 리나의 까페에서 공연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있었던 일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리나와 밥 딜런은 친구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사라토가에 올 적마다 딜런은 리나의 까페에 들렀다고합니다. 친구로서 말이지요. 어쩌면 그 까페의 무대가 딜런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아픈 과거의 한 부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을 거쳐간 포크 가수들은 딜런 뿐이 아닙니다. 미국 포크 음악계의 거의 모든 가수들이 한 번은 거쳐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인데요. 한국에도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빈센트(Vincent)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돈 맥클린(Don McClean), 여전히 앨범을 발매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컨트리 가수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 그리고 전설적인 포크 싱어인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아들로서 역시 잘 알려진 포크 싱어인 알로 거스리(ArloGuthrie) 등이 있습니다. 돈 매클린의 노래로 알려진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는 바로 이곳 까페 리나에서 처음 불려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까페에 공연하러 왔던 돈 맥클린이  까페 바로 옆에 있는 바에서 술을 마시며 종이 냅킨 위에 긁적거린 것이 바로 이 노래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술에 취한 그가 냅킨을 잊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웨이터가  그 냅킨은 주워 돈 맥클린에게 전해 주었고 그것을 받아든 돈 맥클린은 까페 리나에서 그 날 저녁 이 노래를 처음 불렀다고 합니다.


1960년에 처음 문을 연 이래 리나의 까페에서는 술을 팔지도 않었고 또 손님들도 까페 안에서는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며 포크 음악인들을 위한 무대로서 존재하던 까페는 70년대 말과 80년대로 접어들며 포크 음악의 약세와 함께 손님이 줄어들고 점점 경영이 어려워져갔다고합니다. (옆에 있는 사진은 까페 리나에서 공연하고 있는 돈 맥클린입니다.)

리나 자신이 경영에 대한 감각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더 이상 젊은 이들이 포크 음악을 찾지않았던 것도 원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포크 음악을 좋아하던 세대는 이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기에 바빴는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리나는 급기야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여 그 돈으로 까페를 꾸려나가야 했다고 합니다. 까페의 골방에서 힘겹게 살면서도 여전히 까페의 문을 열어놓고 간간히 찾아오는 포크 음악인들과 그 음악을 좋아하는 손님들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정말 경영이 어려워지면 이제는  대스타가 되어버린 과거의 젊은 가수들에게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들은 두말 않고 달려와 까페 리나에서 공연을 펼쳤고 그 공연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리나는 또 한 동안 까페를 경영해 나갈 수 있었지요. 이제는 음악계의 스타가 된 알로 거스리가 이런 공연에 자주 불려왔다고 하는데 한 인터뷰에서 알로 거스리는 리나를 생각하면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연락이 없으면 자신은 리나가 잘 있는 것으로 안다는 거지요.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전화가 와서 "알로, 알로 빨리 와서 공연 좀 해줘." 했다니까요.


까페의 경영도 어려웠지만 80년대에 들면서 리나는 녹내장을 앓아 앞을 잘 보지 못 할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하지만 절대 까페의 문을 닫지는 않았지요. 비록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포크 음악이 있었고 그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리나는 비록 힘이드는 상황이었지만 당당하게 자신은 '사라토가의 여왕'이라고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노래했습니다. 그 라디오 방송에서 리나는 "비록 토가는 입지 않았지만 리나는 사라토가의 여왕"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줍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어머니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강한 모습으로 까페를 꾸려나가던 중 1989년, 예전 까페의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 이제는 유명 배우가 된 스팔딩 그레이(Spalding Gray)가 올바니에 와서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공연을 하면서 리나를 초대했는데 오랫 만에 보는 옛날 친구를 위해 옷을 차려입고 까페를 나서던 리나는 어두운 까페의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맙니다. 앰뷸런스가 와서 리나를 병원으로 옮겼습니다만 병원으로 가는 도중 앰뷸런스에 고장이 생겨 도로에서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늦게 병원에 도착했지만 리나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며칠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45주년 기념 전시회를 할 때의 모습입니다. 아주 작은 공간이지요.)
리나가 세상을 떠난 후 리나의 커피 하우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까페와 리나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음악과 예술에 대한 리나의 열정을 그대로 이어가는 뜻에서 이 까페를 닫지 않고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서 비영리 공간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고 여전히 그렇게 운영하고있습니다. 그래서 까페 리나는 현재 미국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포크 음악 커피 하우스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지요.

지금도 매 주말이면 전문 음악인들의 공연이 있고  주 중에는 여러 행사가 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이 목요일 저녁에 하는 오픈 마이크(Open Mic)의 밤인데요. 약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손님들 중에서 원하는 사람은 무대에 올라 직접 노래하거나 악기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 노래방 기계는 없습니다.^^ 대신 직접 기타나 피아노, 밴죠 같은 악기들을 연주하며 노래하지요. 물론 그냥 앉아서 입장료에 포함된 커피와 초코칩 쿠키 그리고 남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 제가 즐기는 방법입니다.


오픈 마이크 날이 되면 동네에서 노래깨나 한다는 친구들이 늘 모여 들어 서로 실력을 자랑합니다. 그 중에는 정말 전문가가 왔다가 울고 갈 정도의 실력자가 있는가 하면 그저 귀엽게 보아 넘길 그런 친구들도 있지요. 그런데 그들의 실력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모두 음악을 사랑한다는것입니다. 무대와 객석을 구별하기 힘든 좁은 까페에 앉아 같이 박수치고 노래하다 보면 낯선 사람들끼리도 친구가 되지요. 사람이 많이 오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합석이 이루어지고 앉아서 남의 노래를 듣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무대로 나가 노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음악 뿐만 아니고 시를 낭송하거나 코미디를 할 때도 있지요.
아래에는 까페 리나에서 지난 1월에 있었던 공연 장면을 올려 봅니다. 알라스카 출신의 그룹이 공연을 왔다가 마침 사라토가에 사는 나이든 원로 음악인 한 사람을 모시고 같이 공연을 하는 장면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무대와 객석이 구분이 거의 없습니다. 연주자의 숨소리와 음악이 관객의 감동과 함께 그야말로 한 자리에서 어울릴 수 있는 곳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음악인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하며 자신의 운을 시험해 봅니다.
 

지금 이 커피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리나가 생전에 만들었던 영업 방침을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리나는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의 뿌리였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할 것입니다. 그녀가 시작한 것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들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리나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그저 음악이 돈으로 바꿔지는 평범한 비즈니스가 될 뿐이지요. 그런 장소는 이미 너무 많이 있습니다."
리나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계단 위에 앉아서 손님들을 맞던 리나의 목소리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리나의 무릎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던 고양이도 기억을 하구요. 최근 미국의회도서관에서는 리나의 까페가 미국의 포크 음악 발전에 끼친 영향을 인정하여 이 까페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한 까페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인 유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혹시 이 지역으로 여행하실 일이 있는 분들은 시간이 되신다면 한 번 들러보십시오. 리나의 커피 하우스가 있는 파일라 스트리트(Phila Street)에는 이곳 이외에도 작은 까페와 식당 그리고 나중에 소개해 드릴 '흥미진진'한 헌책방도 있습니다. 그리고 리나의 까페로 올라가는 계단의 바로 옆에는 해티의 치킨 집이 있습니다. 루지애나에서 태어난 해티 할머니가 1938년에 처음 문을 연 식당입니다. 1968년에 리나의 커피하우스 아래로 이사를 왔지요.

예전에는 리나의 까페를 찾는 젊은이들이 정통 남부식 프라이드 치킨을 싼 가격에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주인도 딴사람으로 바뀌고 예전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운영이 됩니다만 여전히 해티 할머니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치킨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구글맵에서 가져온 아래의 사진을 보시면 이 건물의 이층이 리나의 까페입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에 하늘색 출입구와 좌우에 창문이 있는 집이 해티 할머니의 치킨 집이지요. 가페로 올라가는 계단은 건물 가운데에 있는 붉은 차양 아래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있습니다. 문에 포스터가 몇 장 붙어 있지요.
마지막으로 리나가 부르는 "Dear Little Caffe" 라는 노래를 가사와 함께 옮겨봅니다. 사실은 제가 예전에 까페 리나에 대한 다큐먼타리를 만들면서 발견한 오래된 LP에 수록되었던 노래입니다. 1972년에 까페를 개업한 12주년을 기념해서 여러 가수들이 모여서 만든 앨범인데 그 속에서 리나도 한 곡을 불렀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와 리나의 커피하우스가 너무나 잘 어울리더군요.

Dear Little Caffe

We'll have a sweet little cafe in a neat little square
We'll find our fortune And our happiness there
We will thrive on the vain and resplendent
And contrive to remain independent
We'll have a meek reputation And a chic clientele
Kings will fall under our spell
we'll be so zealous
That the world will be jealous
Of our sweet little cafe
In our square


* 이 글에 쓰인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 Wikipedia Common (http://commons.wikimedia.org/wiki/Main_Page)
  • Caffe Lena Official Site(http://www.caffelena.org/index.html)
  • Caffe Lena History Project(http://www.caffelenahistory.org/)
  • Hattie's™ Restaurant(http://www.hattiesrestaurant.com/index.htm)
by Clio | 2008/06/27 10:31 | 역사이야기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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