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다른 직장인들처럼 저희 사서들도 1주일에 5일을 근무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직장인 도서관은 독립기념일이나 추수감사절같은 몇 몇 큰 명절을 빼고 거의 연중 무휴로 개방합니다. 도서관이 여는 날은 참고봉사대 역시 개방을 해야하고그러다보니 사서들이돌아가며 주말이나 휴일 근무를 합니다. 물론 평일 저녁 시간에도 밤 9시까지 참고봉사대에서 사서들이 근무를하지요. 이것 역시사서들이 돌아가며 근무를 하고 이런 가외 근무 시간만큼은 다른 날 쉴 수가 있습니다.
![]() 하지만 지난 주말은 그리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평일에 비해서는 적었지만 그래도 학기 초라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을 찾았고 부지런한 친구들은 벌써부터 과제를 들고 참고봉사대를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근무가 끝나갈 무렵인 오후 5시 경이되어서 한 통의 전화가 참고봉사대로 걸려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아서 "참고봉사대입니다" 하고 말을 하자마자 갑자기 반대편 전화기에서 기침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뭐라 말 할 새도 없이 시작된 기침은 한 1-2분 가량 계속되더군요. 그러다가 목을 가다듬고 "거기 도서관이지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연세가 많은 할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미안해요. 알레르기 때문에 생긴 기침이니 전염은 되지 않을거예요."부드럽게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전화를 걸어오신 분은 올바니 인근의 작은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셨는데 한 가지 특이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질문은 이랬습니다. 오클라호마 주의 한 도시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자꾸 자기에게 우편물을 보낸다. 성경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참 좋은 글들을 보내주는데 이 교회의 교파가 좀 의심(?)스럽다. 혹시 이 교회가 어떤 교파에 속하는지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 질문의 요지였습니다. 다행히 그 교회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고 그 홈페이지를 통해 교파를 쉽게 확인할 수있었습니다. 질문에 답을 해 드리며 왜 이런 질문을 대학 도서관의 참고 봉사대에 물어보셨을까 궁금해지더군요. 하지만 그 연세의 어른들 중에는 도서관에 오면 모든 궁금증을 풀 수 있다는 믿고 계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이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틀린 생각도 아니지요.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이 대학 도서관이기는 해도 이런 식으로 일반인들이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어쨌든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고는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 분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궁금증을 풀어줘서 고맙워요. 젊은이(^^). 그런데 어디서 오셨나. 말투를 들으니 이 곳 사람은 아닌듯 한데."의례적으로 드린 말씀이었는데 부다페스트에 대한 저의 말이 씨가 되었나봅니다. 저의 말을 들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활기를 띠면서 이어졌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살아서 젊은이의 말을 들었더라면 정말 기뻐하셨을 거예요. 생전에 늘 부다페스트가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씀하셨거든요"이렇게 시작된 할머니의 이야기는 칼과 가브리엘라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오신 할머니의 부모님들께서 찰스와 엘라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개명한이야기로 이어졌고 이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할머니의 오라버니와 가족들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결국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하고있는 할머니의 손자 이야기에 가서야 비로소 끝이 났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쉬지 않고 말씀을 계속하셨고 저는 "음,...그러셨군요. ..흥미롭습니다. .. 저런... 대단합니다." 등등의 추임새와 함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행히 토요일 오후였으니 그렇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드릴 여유가 있었지 평일이었으면 중간에서 말을 끊었어야만 했을 겁니다. 이야기를 마치신 할머니께서는 질문에 대한 답도 고맙고 특히 늙은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더 고맙다고 하시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같이 참고 봉사대에서 근무를 하던 인턴 A양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저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궁금해했습니다. A 양은 이제 도서관학과 대학원의 3학기 째를 다니고 있는 학생인데 지난 주부터 참고 봉사대에서 실습을 하고 있는 중이지요. 그래서 대강 상황을 설명해 주고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 참고 봉사대에서 근무하는 사서의 일과 자세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폼 좀 잡았지요.^^) 흔히 참고 봉사대에서 일하는 사서들은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종류의 질문들이 그 자리에서 참고자료들을 찾아 보고 답을 줄 수 있는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사서들이, 특히 대학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신경 써서 대답하는 질문들은 이용자께서 찾고 있는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어야 하는 그런 질문들입니다. 저희 도서관에서는 이와 같은 질문 거리를 가진 이용자들을 위해 개별 면담을 하기도 합니다. 한 시간 정도 사서와 함께 앉아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용자께서 찾으시는 정보를 같이 찾고 또 그 정보를 발견하는 길을 가르쳐드립니다.그래서 이런 개별 참고 봉사 상담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의 한 가지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말 속에서 이용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부생은 물론이고 이제 막 대학원 과정을 시작한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경우, 이용자들께서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주에 저와 면담을 했던 월터 아저씨가 그랬습니다. 월터 아저씨는 30년 이상 지역 흑인 사회에서 각 종 사회 운동을 이끌어 오고 있는 대단히 활동적인 분입니다.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을 하여 사회복지학과 Africana Studies 를 같이 전공하고 있는데 그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빨려듭니다. 최근 이 분의 고민은 대학원 과정을 하면서 기말에 제출해야 하는 각 종 보고서들인데 제가 보았을 때 월터 씨는 보고서가 아니라 몇 권의 책을 펴내도 좋을 만큼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보고서 주제와 관련한 상담을 하며 제가 주로 하는 일은 그 분의 말을 듣고 그 가운데에서 연구의 테마가 될 만한 부분이 언급되면 그것에 대해 좀 더 세부적인 질문을하는 겁니다.그리고 그것과 관련하여 제가 접한 다른 연구 성과들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월터 씨의 경험과 연결을 시도합니다. 물론 이것은 사학과에서 구술사 관련 수업을 들으며 터득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사서로서 이용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속에서 중요한 키워드를이끌어내는 습관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용자들과의 개별 참고 봉사 상담에서는 사실 제가 더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답을 들으며 또 다른 질문을 떠올리고 그 대답들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는 길과 힌트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지난 주에 만난 월터 아저씨와 대화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경험이 풍부하신 분이라 제가 하는 질문들에 대답을 하시면서 스스로 또 생각을 하시고 답을 찾아가시더군요. 대부분의 학생들과도 이런 방식으로 대화하다 보면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 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고 봉사대에서 일하는 사서가 하는 일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일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힌트를 가지고 다른 정보들을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정보 중개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도서관 사서이지만 이 일을 통해 월급 이상의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직업이 사서이기도 합니다. 월터 아저씨는 제가 일러준 몇 편의 논문을 통해 이번 학기 기말 보고서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저는 아저씨의 경험으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비단 경험이 많은 월터씨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제가 사서라는 이 직업을 좋아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한 가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돈을 받으면서 배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 블로그도 이러한 대화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큰 부담없이 솔직하게 적어나가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 글을 읽고 올리는 덧글을 통해 자신이 미처 하지 못 했던 생각을 발견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모자라는 부분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올린 글에 대한 잘못과 실수를 지적하는 방문자들은 정말 고마운 분들이지요. 그런 분들이야말로 나의 글을 가장 차근차근 읽어주고 또 시간과 정성을 들여 잘못을 지적해주는 분들이니 말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두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상대의 말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합니다. 설사 상대의 말이 잘못되었고 내가 하는 말이 맞다고 생각되더라도 억지로 그것을 고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 그래, 그 말도 일리는 있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간다면 상대방도 비록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느끼는 것이 있을 겁니다. 결국 이 말을 블로그 세계에 적용한다면 글을 올리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 동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대화에 나선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어느 한 쪽이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정밀한 논리로 남들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러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그 사람이 비난당하는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좀 더 건설적이고 따뜻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죽을 때 까지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제대로된 대화는 그러한 배움을 계속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지요. ... 이런... 참고봉사대에 걸려온 한 할머니의 전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것이 왜 이렇게 길어졌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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