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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7   새학기 첫 주의 풍경 [48]
새학기 첫 주의 풍경

지난 이번 주 월요일부터 새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학기가 시작되고 첫 날 아침부터 참고봉사대에서 근무를 했었지요. 대학교에 입학하고 도서관에 처음 와서 어리둥절해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학생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지난 여름 2박 3일 동안 학교에 대한 자세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지만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리고 첫 수업에서부터 읽어가야 할 과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강의 계획서를 미리 다운로드 받아 읽어보고 준비한 후에 수업에 참가해야하는 강의도 있는 통에 도서관 문을 열자 마자 학생들이 들이닥쳤습니다. (* 위에 있는 사진은 1950년 7월 칠레의 산티아고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지금 대학생들에 비해 훨씬 더 성숙해 보이는 모습입니다.)

두 시간 근무하는 내내 잠시도 쉬지 않고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하다보니 나중에는 입에서 단내가 나고 목이 탈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지라 즐겁게 웃으며 학생들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개강 첫 날 치고는 조용한 편이었다고 사서들끼리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요. 종종 무엇인가 중요한 일이 있는 날 혹은 절대 문제가 일어나서는 안되는 날에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기거나 도서관 서버에 문제가 생기는 등 일이 벌어졌었는데 올 해는 비교적 평온하게 넘어 갔습니다.

지난 여름 동안 신입생들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도서관에서는 신경을 써서 신입생들에게 도서관 안내를 했습니다. 그리고 개강하기 직전에는 이번 학기에 새로 입학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도서관으로 초청하여 환영하는 파티를 열었었고 또 그 학생들에게 도서관의 시설과 서비스에 대해 안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마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나 비슷하게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새로 입학하는 학생들 중에는 중국 학생들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한국과 인도 학생들의 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도서관 투어에서는 중국어, 한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외국어가 가능한 사서들이 나서서 언어별 투어를 조직했었지요. 막상 그렇게 준비했지만 중국인 학생들은 상당히 많은 수가 투어에 참가한 반면 한국어 투어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섭섭했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아마 한국 학생들은 도서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 혼자 자위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첫 주에는 거의 매일 강의가 있었습니다. 매 학기 초면 늘 하는 강의이지만 올 해는 유난히 빨리 강의 요청이 들어 왔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도서관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저로서야 환영할 일이지요. 도서관 목록에서 책을 검색하는 방법에서부터 학술 정보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연구 논문을 찾고 또 역사 연구에서 꼭 필요한 일차 사료를 찾는 방법 등을 모두 강의하면 2시간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처음 이 강의에 참여하는 학생들이라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쏟아붓습니다.

몇 년 만에 처음 강의를 요청하셨던 60대 노교수님의 경우는 2시간 내내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무엇인가 필기를 하고 나중에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 하겠다고 한숨을 쉬시더군요. "참 공부하기가 편해졌는데 그걸 모르고 늘 몇 십년 하던 방식으로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부하는 것 그 자체가 쉬운 일이 된 것은 아니라고 제가 위로를 드렸지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새로이 등장한 기술들은 공부를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고 과거의 학자들이 공부하던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강의를 할 때 제가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전략은 일차적으로 사용가능한 자료의 종류라도 소개 해놓고 자세한 사항은 저와 함께 일대일로 앉아서 다시 상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학생들에게 언제라도 좋으니 궁금한 점은 질문을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덕분에 다음 주에는 학생들과 개인적으로 만날 약속이 세 건 이미 예약되어 있습니다. 기말 리포트의 주제를 이미 정한 학생들인데 자신들의 주제와 관련된 원사료를 찾는 방법에 대해 개인별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릅니다. 어떨 때는 정작 리포트를 쓰는 학생보다 제가 더 흥분을 해서 자료를 찾아 헤메게 되고 결국 그 학생이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손사레를 치는 일도 생기는 통에 제가 좀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제 일이지요.

(*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 정부는 참전 용사들이 원할 경우 대학 학비를 지원했습니다. 이른바 G.I. Bill 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그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에 진학했고 미국의 대학들 역시 그 일을 계기로 크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에는 1947년 아이오와주의 한 대학 강의실에 앉은 참전 용사 학생들을 찍은 모습입니다. )
개강 첫 주 참고 봉사대에서 일할 때면 공식적으로 받는 질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수업에 쓰이는 교과서가 도서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이지요. 몇 년전 그런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만 미국의 대학 도서관들 중에는 교과서를 구입하지 않는 도서관들이 대부분입니다. 학술 서적으로 출판된 책을 교재로 사용하는 경우는 다르지만 교재로만 쓰이기 위해 출판이 된 책은 도서관 예산으로 구입하지 않습니다. 연구와 교육을 위해 오래 동안 이용될 학술 서적들을 구입하기에도 빠듯한 예산이다 보니 매 년 새로운 판이 나오는 교재들을 구입할 여력이 없습니다. 설사 구입을 한 다고 해도 일 년만 지나면 새 판이 나오고 도서관에 있는 구 판은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리니 도서관으로서는 낭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책에 대해 일부 학생들은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불만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할 바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너무나 학생들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200달러가 넘어가는 예술사 책이나 150달러짜리 수학책을 보고 있노라면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저희들로서도 입이 벌어집니다. 꼭 필요한 교과서만 구입을 했는데도 벌써 500 달러가 책 값으로 나갔고 아직 한 두 권 더 구입해야 한다면 울상을 짓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인터넷 헌책방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Chegg.com College Book Renter 같은 최근 성업중인 교과서 대여 업체들을 소개해 주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교과서 대여 업체에서 책을 빌리는 것 역시 싸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정가가 200 달러가 넘는 미분 교재를 한 학기 동안 빌리는데 95 달러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학생들에게 유리한 이유는 200달러가 넘는 그 책을 구입해서 한 학기 동안 이용하고 헌 책으로 팔 경우 원래 가격의 채 20% 도 받지 못하니 차라리 손해볼 금액 보다는 적은 금액을 지불하고 빌리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학생들끼리 공동으로 책을 구입해서 서로 나누어 보는 경우도 있고 아예 책 구입을 포기하고 친구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빌려보거나 인근의 서점이나 서점에 딸린 까페에서 필요한 내용을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작권법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는 곳이라 한국의 대학가에서처럼 책전체를 복사해서 제본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어둠의 경로를 통해 일부 책을 구하는 학생들도 있더군요. 하지만 모든 과목이 다 그렇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결국 매년 학기 초면 도서관 사서들은 교과서를 찾는 학생들에게 왜 대학 도서관에서 교과서를 소장하지 않는지 설명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과연 학생들이 사서들이 하는 설명을 이해하는지 모르겠지만 설사 이해한다고 해도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경제 위기로 인해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학생들이 많은데 등록금은 오르기만 하고 교과서 값도 따라 오르니 학생들에게는 이중 삼중의 부담이 생깁니다.

학자금 융자를 받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빌린 학자금은 졸업 후에도 오랫 동안 학생의 뒤를 따라 다닙니다. 쉰이 넘은 동료 사서 중의 한 사람이 작년에 활짝 웃으면서 하는 말이 마침내 대학 학자금으로 빌린 돈을 다 갚았다는 것입니다. 학부 4년은 물론 도서관학과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까지 마친 분인데 박사 과정은 장학금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석사 과정 까지는 등록금을 모두 다 내야 했었고 그것도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학이다 보니 공립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 비해 더 많은 금액을 빌려야 했었다는 거지요. 졸업 후에 취직을 하고 월급을 받지만 생활비와 월세 등등 기본적인 지출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학자금을 갚아 온 것이 마침내 끝이 났으니 잔치를 할 일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미국의 대학생들이 처한 그런 상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물론 집안이 넉넉해서 풍부한 지원을 받으며 공부에만 몰두 할 수 있는 편안한 대학 생활을 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지금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 J 라는 학생 처럼 일하며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학부 3학년인 J 는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15시간을 일하며 6 과목의 수업을 듣습니다. 그것만해도 힘이 들텐데 수업과 도서관 일이 끝난 후에는 다시 인근의 수퍼 마켓에서 주당 20시간을 일한다고 합니다. 상품을 정리하고 고객들에게 샘플을 나누어주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저도 그 사실을 몰랐는데 어느 날 저녁, 수퍼 마켓에 갔다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돌아 보니 J 였습니다.

190 이 가까운 큰 키에 비쩍 마른 친구가 어울리지 않는 짧은 앞치마를 두르고 서서 새로 나온 음료의 시음 코너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아는 얼굴을 만나 반갑다며 저에게 음료를 권했습니다. 잠시 서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수업을 적게 듣는 학기에는 이것 말고 다른 일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학비며 책 값 그리고 집세를 충당할 수 있다는 군요. 자기 집 안에서는 최초의 대학생이라며 자랑스러워하는 J 는 대학에 올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아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지만 즐겁게 웃으며 그 힘든 일들을 한꺼번에 하고 있더군요. 가끔 목격한 일입니다만 J 에게는 시간이 나면 아무 곳이나 앉는 곳이 공부방입니다. '토막잠'이 아니라 '토막 공부'를 하며 학교 생활을 하는 J 를 보면서 저보다 한참 어린 친구이지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젊음이 부러웠구요.

한국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예전에도 상아탑이 아닌 우골탑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 요즘에는 더욱더 대학교 교육이 부담되는 분들이 늘어 났다고 하더군요.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그 학생을 둔 부모님들까지 등록금 부담에 허리가 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책 값은 미국만큼 비싸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미국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힘들게 공부를 마친 이 후에도 취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고 보면 참으로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질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대학교와 그 대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지만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이 가지는 위력이 아직도 엄연한 사실이다 보니 대학교는 반드시 가야하는 곳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무엇을 할 것이라는 뚜렷한 생각없이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그것 역시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확실한 목표를 가지지 않고 대학에 왔지만 저는 그 4년의 시간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그 시간을 무의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학생들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대학에 들어 왔고 또 대학에 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그런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는 대학에 가서 보내는 시간 동안 최대한 등록금의 본전을 뽑으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 중의 한 가지는 대학교에 제공하는 교육의 기회와 각종 서비스를 최대한 이용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한 학기 동안 들을 강의를 신청할 때 학생 여러분은 어떤 강의를 선택하십니까? 역설적으로 등록금은 점점 더 비싸지는데 학생들이 선택하는 강의는 점점 더 등록금 본전을 찾기 어려운 강의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학점을 딸 수 있는 쉬운 강의, 리포트 숙제가 적은 강의, 휴강 잘하는 교수의 강의 등등 본전을 찾을 수 없는 강의들이 더 인기가 있더군요. 시험을 많이 치르고 숙제가 많고 주말에도 반드시 보강을 하는 교수님의 강의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강의가 더 등록금 값을 하는지 제대로 따져보십시오. 막상 10 만원짜리 구두를 한 컬레 사더라도 이리저리 따져보고 이곳 저곳 비교해 보면서 이 구두를 사면 얼마나 오래 잘 신을 수 있을지 요모조모 따지는 분들이 과목당 몇 십만원짜리 강의를 선택할 때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수업과 함께 대학교에 있는 여러 시설 중
에서도 도서관은 특히 등록금 본전 뽑기에 유리합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도서관에는 취업공부하는 열람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서관에는 4년 내내 여러분들이 이용을 해도 다 찾아보지 못 할 자료들이 있고 여러분의 학업과 연구를 도와주는 많은 서비스들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학생들은 그런 자료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런 서비스가 있는지 모르고 졸업을 합니다. 그저 도서관에는 열람실이 있고 그 곳에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새벽 일찍 도서관에 가야 한다는 것만을 기억하고졸업합니다. 그 만큼 등록금의 본전을 찾지 못 하는 거지요. 아깝지 않습니까?

좋은 대학을 만들어 가는 것은 교수와 학교 당국 그리고 학생들이 같이 해나가야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학생들이 할 일은 최대한 등록금의 본전을 뽑는 일입니다. 만일 학교와 교수진이 등록금에 걸맞는 교육을 하지 못 할 때는 항의를 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상하게 들릴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자로서 생산자에게 제대로 된 제품을 공급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학교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한 학기 동안 학교로부터 꼭 등록금의 본전을 찾아갈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훔쳐" 나가시길 빕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학생들을 물론이고 학교에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더나아가서 우리 나라 전체를 보더라도 그게 남는 장사입니다.

* 이 글에 쓰인 이미지는 구글의 LIFE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by Clio | 2009/09/07 09:24 | 세상이야기 | 트랙백 | 덧글(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