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전부터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사서 교사에 대한 글을 올린 후 달린 덧글들을 보면서 사서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였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 즉,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 주는 사람 그리고 책을 정리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사서에 대해 많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인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실제 도서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시는 분들 역시 책 대출과 반납, 분류와 정리, 라벨 붙이기 등이 도서관 사서가 하는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지 제가 일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도서관 사서들에 대해 그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그래서 과연 그러한지, 과연 사서라는 직업이 하고 있는 일이 그것 뿐인지 한 번 따져 볼까 합니다.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서에 대한 이미지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안경을 낀 중년의 여성, 단추를 턱 아래까지 꼭 채운 브라우스와 가디건을 입고 엄숙한 표정으로 도서관에 앉아 책을 대출해 주는 사람, 종종 손가락을 입에 대고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는 사람의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종종 제가 도서관 사서라고 이야기라면 남들이 "사서같이 생기지 않았다." "넌 남자잖아." "편안한 직장에 다니는구나." "심심하지 않느냐?" 등등의 이야기도 듣습니다. 과연 사서가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사서는 도서관에 앉아서 떠드는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고 책을 빌려가는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늦게 반납하는 사람들에게 연체료를 받기만 하는 사람들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사서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사서'라는 호칭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은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거나 그 외 교육 기관에서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고 정부에서 발행하는 1급 혹은 2급 사서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도서관에는 이와 같이 사서 자격증을 가지신 분들 외에도 일반 행정 직원들이 근무하고 계십니다. 제가 듣기로는 공익 근무 요원들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사서 자격증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밖에서 보시기에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사서라고 생각하시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의 눈에 띠는 도서관 직원들은 대출대에서 책을 대출하고 반납받는 분들인데 그런 분들 가운데에는 사서보다는 일반 직원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미국의 대학 도서관을 예로 들면 대출대(Circulation Desk)에서 근무하는 사서는 없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일반 직원들이나 학생 아르바이트 생들입니다. 만일 정식 학위를 가진 사서에게 대출대 근무를 시키면 아마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대출대에서 책 빌려주는 일을 하러 도서관학 석사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보통 대출 업무를 하는 부서에는 그 부서를 총괄하는 한 명 정도의 정식 사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출대의 업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서관은 분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고 그런 기관에서 이용자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대출대의 업무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 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력에 따라 도서관에 대한 이용자들의 생각과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고 봉사대가 따로 있는 경우에도 출입구에 가까운 대출대에 와서 도서관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대출대에서 일하시는 분들 역시 도서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책을 정리하거나 새로 들어온 책에 레이블을 붙이는 일과 같은 단순 작업을 하는 사서들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희 도서관의 경우 역시 학생 아르바이트생과 일반 직원들이 그 일을 담당합니다. 아울러 컴퓨터 카탈로그에 자료를 입력하는 일도 단순한 작업은 사서가 아닌 일반 직원들이 맡아서 합니다. Copy Cataloging 이라고 불리는 작업의 경우는 다른 도서관에서 만든 도서목록을 그대로 복사해와서 우리 도서관에 맞게 수정만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리 많은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작업들은 간단히 몇 달만의 교육으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용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도서관 업무들을 맡은 것이 일반 직원들이라면 자격증을 가진 사서는 무슨 일을 할까요? 제가 한국의 상황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웃 블로거 한 분의 글을 링크합니다.
대신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의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사서들이 맡은 고유한 업무는 직종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저와 같이 한 가지 특정한 주제를 맡아서 일하고 있는 주제 전문 사서의 경우 그 분야와 관련하여 도서관에서 구입할 책을 선정하고 그 주제와 관련하여 이용자들과 상담하는 것이 큰 업무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과목과 연구의 방향에 따라 도서관에서 구입하는 책은 달라져야 합니다. 물론 돈이 많아서 출판되는 모든책을 구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다 보니 최대한 효과적으로 책을 구입하게 위해 늘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야와 관련해서 생산하는 최신의 정보들을 늘 신경써서 입수하고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이용자들에게 제공합니다.
아울러 학기가 시작되면 교수님들과 함께 전공 과목의 강의에 들어가서 그 과목과 관련된 각 종 정보 자원을 소개하고 도서관에 대한 일반적인 이용법을 강의하는 것도 사서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학기 내내 참고 봉사대에서 근무하면서 이용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또 프로젝트를 들고 사무실에 찾아 오는 학생들이나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전문 정보를 제공하는 일도 큰 업무 중의 하나입니다.
일주일이면 수 백 권의 책 혹은 책에 대한 정보가 제 책상 위를 지나가지요. 그런데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 책들 속에 있는 정보를 빨리 찾아서 이용자에게 제공하거나 그 책이 우리 도서관에 필요할 것인지 판단하고 구입을 결정하는 일을 하는 것도 --물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만-- 많은 시간을 잡아 먹습니다. 사실 그러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도서관학 석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주제 전문 사서 이 외에도 일은 참 많은데요. 작년에 출판된 책 "A Day in the Life: Career Options in Library & Information Science"에 소개된 도서관학 전공자의 직업 중 일부를 아래에 옮겨봅니다.
Adult Services Librarian--Teen Librarian--Children's Librarian--Multimedia Librarian--Electronic Services Librarian--Library Consultant--Reference Librarian--Government Documents Librarian--Outreach Librarian--Distance Education Librarian--Collection Development Librarian--Conservator--Cataloging Librarian--Special Materials Cataloger--Electronic Resources--Access Services Librarian--GIS/Data Librarian--Metadata Specialist--Information Literacy Coordinator--Head of Interlibrary Loan/Document Delivery Services--School Librarian--Technical Librarian/Document Controller,Oil and Gas Company--Librarian, Internet Start-Up Company--Law Librarian, Private Law Firm--Armed Forces Librarian--Police Force Librarian--Coordinator of Correctional Libraries--Librarian for the Blind and Disabled-- Editor, Publisher, Author,Speaker--Indexer--Rights and Permissions Manager--Database Librarian--Personal Librarian--Independent Information Professional--Information Architect--Competitive Intelligence Analyst--Knowledge Management Specialist
일부만 옮겼지만요 도서관학 학위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직업이 참 많지요? 그리고 사서(Librarian)라는 이름이 붙은 직업도 업무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업의 공통점은 바로 책, 혹은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정보'를 다루는 직업이라는 사실입니다.
정보를 찾고 그것들을 모아서 질서있게 분류하고 이용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서들입니다. 과거에는 책이 주로 정보 전달을 담당했지만 지금은 책 뿐만 아니라 각 종의 인터넷 자료, 데이터 베이스,그리고 기타 멀티 미디어 자료들도 정보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의 사서들은 그 모든 매체들에 능숙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서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일 뿐입니다.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복잡한 정보 자원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쉽게찾을 수 있도록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인터넷에 모든 정보가 다 있고 자신은 그것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고 믿고 계십니다. 다음이나 네이버 혹은 구글을 통하면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그것은 정말 큰 오해입니다. 그렇게 공개된 인터넷 검색엔진을 통해 발견되는 정보는 인터넷에 산재한 정보들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다음이나 네이버를 통해 발견한 정보가 얼마나 믿을만 한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분들은 그것을 믿고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오늘 드리는 이 말은 인터넷 뿐만 아니라 책을 찾아 보아야 한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당연히 필요한 일입니다만 제가 이 말을 드리는 것은 정보를 제대로 정리, 분류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찾는 능력이 그렇게 간단하게 길러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을 4년 동안 공부하는 곳이 바로 문헌정보학과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말하고 있는 식으로 하자면 정보과학과(Information Science)입니다. 사서들은 바로 그런 능력을 갈고 닦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싣고 있는 매체가 책이 되었건 인터넷이 되었건 그것들을 제대로 모으고 정리하여 체계적인 지식과 지혜가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사서들입니다. 다른 말로 풀어 보자면 정보의 혼돈 속에서 빛과 어둠을 만들어내고 질서를 창조하는 사람들이 사서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낸 체계와 질서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좀 더 쉽고 편리하게 그리고 빠르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 자신의 목적에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사서들의 이러한 노력에 의해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정보와 지식과 지혜가 더 쉽고 빠르게 소통될 수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서들의 이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영화나 텔레비전 등과 같은 매스 미디어의 영향도 크겠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사용하였는가 하는 것도 관건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존재하는 사서들에 대한 이런 이미지는 쉽게 바뀔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 도서관의 현실이 180도로 달라지지 않은 다음에는 말입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제대로 된 도서관을 운영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건물만 지어 놓고 그것을 운영할 전문 인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그런 정책이 나오는 것이지요. 과연 어디에서부터 시작을 해야할까요?
저는 이 문제의 실마리는 사서 선생님들께서 쥐고 계시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크게는 한국도서관협회나 기타 도서관 관련 큰 단체들의 적극적인 사서 이미지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서와 도서관에 대한 공익 광고를 도서관주간에만 할 게 아니라 연중으로 할 수 없을까요? 전문 광고 회사를 고용해서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광고를 만들고 그것을 텔레비전을 포함한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할 수는 없을까요? 그것을 통해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 나가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결코 지금의 이미지는 바꿔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선에서 일하시는 사서 선생님들께서도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사서와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홍보해야 합니다. 아울러 자기 한 사람의 모습이 전체 사서의 이미지를 대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용자들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사서 개인으로서의 노력과 사서라는 집단의 노력이 합쳐질 때 사서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지지않을까요? 그러한 노력을 통해 일반인들의 인식이 달라진다면, 그래서 도서관이 정말 필요한 기관이고 그것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다면 결국 도서관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지난 2007년 미국도서관 협회의 연례 회의에서 한 편의 다큐먼타리가 개봉되었습니다. "헐리우드 사서(The Hollywood Librarian)"라는 제목의 이 다큐먼타리를 만든 감독, 앤 사이들(Ann Seidl) 역시 사서 출신인데요 그녀는 자신이 이 다큐먼타리를 만든 목적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도서관을 찾는 많은 이용자들이 도서관을 마치 하나의 자연 현상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사서)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모르고 계십니다. 결국 이 작품은 도서관사서들에 대한 저의 연애 편지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스크린(컴퓨터, 휴대폰, 털레비전) 을 중심으로 한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사서들이 바로 이러한 정보 시대에 나타나는 고립을 막아줄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과 사서들은 미래 사회의 심장 박동과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도서관은 사람들이 모여서 배우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모임의 장소(the gathering place)가 될 겁니다. 그게 바로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유입니다."
좀 거창하게 들리십니까?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시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이 다큐먼타리에 참여한 사서들의 인터뷰를 들어 보면 그들은 사서가 되기 위해 태어났고 사서가 소명(calling)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실지도 모를 사서선생님들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스스로 사서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제는 자신감 있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사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아래에는 "헐리우드 사서(Hollywood Librarian)"의 예고편을 올려 봅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다큐먼타리에 한글 자막을 달아서 우리 나라에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 이 글에 쓰인 이미지들은
미국 의회 도서관의 American Memory 웹싸이트와
미국 도서관 협회의 홈페이지와
Cafepress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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