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직 대통령측과 청와대 사이에서 전직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한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치적인 복선이 깔려 있는 설전이기도 하고 또 어느 한 쪽도 100% 합법적인 주장을 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 기회를 통해 전국민들이 국가기록원이라는 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기록물 보존과 관련된 여러 법안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기록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 양 측의 공방과는 별개로 저는 '흐뭇'합니다. 물론 국가의 다른 급한 현안이 많은데 이 문제에 모든 신경이 주목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만 기록학을 공부했고 또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소식들을 보면서 저는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지원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 시스템에 대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신문 보도와 특허정보원의 특허정보검색서비스를 통해 찾아 본 특허 등록 자료들 뿐이라 과연 이것이 어떻게 실무에서 사용이 되었는지 잘 알지는 못 합니다. 그런데 몇 몇 보도를 보니 전직 대통령께서는 자신이 작성한 문서들을 보기 위해서 봉하 마을에 이지원 시스템을 설치한 서버를 가져갔다는 말을 하더군요. 과연 그것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에서 생산된 문서들은 이지원 시스템이 없이는 전혀 읽을 수 없다는 말이 되는데 저에게는 이 부분이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국가기록원의 홈페이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전자기록의 관리체계에서는 기록의 "생산 이전 단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즉, 기록의 관리와 보존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우고 그에 따라 전자 기록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해야만 시작단계에서부터 제대로 된 기록의 관리 및 보존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몇 백 만건의 전자 문서들을 만들어 두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거나 그러한 잘못을 바로 잡는데 막대한 시간과 인력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부분은 과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이지원 시스템을 설계할 때 기록의 관리 뿐만 아니라 보존에 대한 고려를 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특허청 홈페이지를 통해 이지원의 특허 등록 자료를 보았지만 기록의 체계적인 보존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물론 특허 관련 자료라서 그렇겠지만 이지원 시스템을 이용한 업무의 효율성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루더군요.
기록의 생산 이전 단계에서부터 보존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볼 때 결국 이지원 시스템을 설계할 때부터 국가기록원측과 공동으로 혹은 기록원의 조언을 받아 시스템이 만들어졌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신문 보도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전부이기 때문에 과연 시스템의 개발자인 청와대와 국가 기록원 사이에 어떤 공동작업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대통령의 자료를 넘겨 받고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전직 대통령 측의 말은 혹시 이러한 시스템 상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이지원 시스템이 청와대의 문서를 관리하는데는 매우 효과적인 시스템이었지만 장기적으로 기록을 보존하는데는 적합하지 않은 시스템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쯤 국가기록원에서는 청와대에서 넘겨 받은 전자 기록들을 다시 영구 보존을 위한 포맷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겠지요.
전직 대통령 측의 말처럼 기록들을 열람하기 위해서 이지원 시스템을 설치했어야 한다면 그것은 기록 보존의 차원에서는 그리 좋은 일은 아닌 듯 합니다. 대통령 재임시 기록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지원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면 -물론 과장이 포함되었습니다만- 몇 백년 후의 역사가들이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의 기록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몇 백년전에 만들어진 이지원 시스템을 설치해 두어야한다는 말이 됩니다. 분명 그 전에 다른 시스템이 개발되겠지요. 그런데 만일 그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자적으로 만들어진 노무현 대통령의 기록은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일을 막기 위해 국가기록원에서 수고를 하고 계십니다.
전자 기록의 보존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전자 '기록'의 정의, 원본과 복사의 구분, 그리고 그 기록들을 저장하는 매체에 대한 논의는 물론이고 저장 방식이나 보존 포맷 그리고 기타 하드 웨어 장치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 분야의 빠른 기술 변화로 인해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공감을 얻고 있는 것들 중의 한 가지는 기록을 저장하는 포맷이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회사가 독점권을 가진 포맷이 아니라 일반에게 공개되어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열린 포맷(Open Format)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보았을 때 대통령의 기록은 물론이고 기타 정부의 여러 기관에서 생산해 내고 있는 기록들은 얼마나 '열려'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궁금한 이유는 500년 전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실록을 여전히 우리가 읽을 수 있는것처럼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전자 기록들도 500년 후에 우리 후손들이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이지원 시스템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없이 올린 글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틀린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아 주십시오.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